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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과의사의 “~할걸” 노트

정형외과 전문의 남희승 ·

제 컴퓨터에는 수술 사진 폴더가 수백 개 있습니다. 수술이 끝나면 폴더 이름을 붙이는데, 날짜와 수술명 뒤에 한 줄을 덧붙이는 습관이 있습니다.

“~할걸.” “~볼 것.” “다음엔 이렇게.”

누구에게 보여 줄 생각으로 쓴 글이 아닙니다. 다음 수술 전날 밤에 다시 열어 보려고 남긴, 저 자신에게 보내는 쪽지입니다. 오늘은 그 쪽지 몇 장을 꺼내 보려 합니다. 환자분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도록 바꾸어 적었습니다.

수술 사진 폴더의 이름 뒤에는 늘 한 줄이 붙습니다. 실제 폴더 일부를 환자를 알 수 없도록 바꾸어 다시 그렸습니다.

01“꽉 끼면 오히려 조심. Skyline view 꼭 보기”

무릎뼈(슬개골)가 부러진 환자였습니다. 부러진 조각을 맞추고 속이 빈 나사로 고정하는 수술입니다. 나사가 들어가는 길에 끼우는 관(cannula)이 뼈에 꽉 물리는 느낌이 들었고, 저는 그 느낌을 “잘 잡혔다”는 신호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수술 후 사진에서 위쪽 나사가 무릎뼈 안쪽 연골면을 건드리고 있었습니다. 정면과 옆에서 찍은 사진만으로는 보이지 않는 각도였습니다. 무릎을 구부려 무릎뼈를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사진, 즉 skyline view를 찍었다면 수술실에서 바로 알 수 있었을 겁니다.

그날 폴더에 남긴 메모는 두 줄입니다. 손에 오는 단단한 느낌이 늘 정답은 아니라는 것, 그리고 확인 사진은 한 장 더 찍어도 손해가 없다는 것입니다.

02“그냥 뼈 터널 뚫어서 할걸”

무릎 안쪽 연골판의 뿌리가 찢어진 환자였습니다. 연골판 뿌리는 연골판을 뼈에 묶어 두는 닻 같은 곳이고, 여기가 끊어지면 연골판이 제 역할을 못 합니다.

뿌리를 고치는 방법은 여럿입니다. 저는 찢어진 자리를 그대로 꿰매어 보려고 무릎 뒤쪽 좁은 공간에서 오래 씨름했고, 결국엔 다른 고정 기구로 마무리했습니다. 수술은 끝났지만, 처음부터 상한 뿌리를 정리하고 뼈에 작은 터널을 뚫어 당겨 고정하는 방법을 택했다면 더 단순했을 겁니다.

폴더 이름에는 “뒤쪽은 무리해서 꿰매지 말자”는 메모도 붙어 있습니다. 수술 중에 계획을 바꾸는 것보다, 수술 전에 “안 되면 이걸로 간다”는 두 번째 계획을 정해 두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03“좀 작은 나사로 박을걸”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무릎 주변의 허벅지뼈가 부러져서 오신 분이었습니다. 인공관절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나사를 넣을 수 있는 공간이 넉넉하지 않은 수술입니다.

허벅지뼈 아래쪽 안쪽 면은 생각보다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습니다.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나사를 고를 때는 “길고 굵을수록 단단하다”는 쪽으로 손이 갔습니다. 수술 후 사진을 보면서, 그 기울기를 한 번 더 생각했다면 더 짧고 가는 나사로 충분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같은 폴더에는 “수술 기구로 뼈 위쪽을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렵다”는 메모도 있습니다. 교과서의 해부학 그림과 실제 환자의 뼈 사이에는 늘 몇 도의 차이가 있고, 그 몇 도는 수술실에서만 배울 수 있습니다.

04“수술 안 해도 됐을 것으로 생각”

넘어지면서 팔꿈치 안쪽과 바깥쪽 인대가 함께 다친 환자였습니다. 양쪽 인대를 뼈에 다시 붙이는 수술을 했고, 수술 자체는 계획대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폴더에 남긴 메모는 “잘했다”가 아니라 “수술하지 않고 치료해도 가능했을 것”이었습니다. 팔꿈치를 많이 보시는 선배 교수님께 여쭤보니, 프로 선수가 아닌 일반인은 이런 경우 수술을 잘 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관절이 안정적이라면 보조기와 재활로도 충분히 좋아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외과의사에게 가장 어려운 판단은 “어떻게 수술할까”보다 “수술을 할까”입니다. 칼을 들 수 있는 사람일수록 내려놓는 선택지를 더 진지하게 저울질해야 한다는 것, 이 메모가 저에게는 가장 무겁습니다.

05“잘했다고 나름 생각함”

반성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깨 힘줄(회전근개)이 작게 찢어진 환자를 관절경으로 봉합한 날, 폴더 이름에 조심스럽게 “잘했다고 나름 생각함”이라고 적었습니다. “나름”이라는 두 글자를 붙인 건, 진짜 평가는 몇 달 뒤 환자분의 어깨가 내린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다른 선생님에게 배운 요령을 적어 둔 폴더도 많습니다.

  • 발목 수술에서 피부를 어디에 열어야 인대를 두 번 가르지 않는지
  • 고관절 골절 금속봉을 넣을 때 입구를 어느 쪽으로 밀어야 하는지

어떤 요령은 바로 다음 수술에서 쓰였고, 어떤 것은 아직 다시 쓸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맺으며: 이 노트를 꺼낸 이유

수술을 앞둔 환자분들은 “이 수술 몇 번이나 해 보셨어요?”라고 묻곤 합니다. 좋은 질문입니다. 저는 여기에 질문 하나를 더 권하고 싶습니다. “선생님은 수술이 끝나면 무엇을 다시 보세요?”

수술 횟수는 경험의 양을 말해 주고, 돌아보는 습관은 그 경험이 실력으로 바뀌는지를 말해 줍니다. 저의 “~할걸” 노트는 부끄러운 기록이기도 하지만, 다음 환자분의 수술을 조금 더 낫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오늘 저녁에도 아마 폴더 하나를 만들고, 그 뒤에 한 줄을 적게 될 겁니다.

남희승